‘외모 보고 알바 뽑았다’ 자리 없어서 줄 세운 카페, 망한 줄 알았더니…

‘메가커피’는 우리나라 커피 전문점 중에서도 높은 순위로 살아남은 기업 중 하나다. 메가커피가 주목을 받으면서, 해당 기업의 특별한 스토리가 퍼지고 있다.메가커피가 이전에는 ‘앤하우스’였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인생 망했다고 생각했는데…”40대에 뻥튀기장사 시작해서 대박났죠”

뻥튀기 할아버지 인생 위기시기에 장사 시작 인터넷 방송으로 뻥튀기 판매 매월 순수입 금액은? [SAND MONEY] “뻥이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펑 하니 터지는 폭발음이 들린다. 이내 뿌연 연기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온다. 우리의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간식 ‘뻥튀기’는 최근 세계 각지에서 들어온 이색 디저트에 밀려 점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연예인은 다 성공한다고요? 사업도전했다가 전재산 날렸습니다”

연예인들이 사업을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요. 직업의 특성상 정기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연예인들은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사업을 많이 하곤 합니다. 방송을 통해 공개된 몇몇 연예인들은 이미 사업으로도 큰 성공을 이룬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모든 연예인이 사업에 성공한 것은 아닙니다. 사업을 시작했다 호되게 혼난 연예인들도 있는데요. 어떤

16살에 오토바이 면허 딴 한국인 청년 “휴식차 떠난 곳에서 대박났죠”

베트남에서 걸어 다니는 것은 외국인 아니면 개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베트남의 도로는 자동차 대신 오토바이가 점령하고 있는데요. 자동차가 워낙 비싼 탓도 있지만, 비좁고 구불구불한 주택가와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은 베트남 현지에서 오토바이가 자동차보다 인기가 더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베트남에 등록된 오토바이 대수는 4600만대로 인구 수보다 많은데요. 가구 평균

“자본금 1억원으로 창업 가능한 프랜차이즈 매장 어디 있을까요?”

뉴스1 취업난이 심각해지면서 취업을 포기한 2030대 청년들이 프랜차이즈 창업에 눈을 돌리고 있습니다. 실제 본도시락을 운영하는 본도시락에서는 신규 출점 매장 중 2030 청년 창업자의 비중이 작년보다 20% 가까이 증가했다고 밝혔는데요. 초기 자금은 부족한 청년들은 적은 금액으로 고효율을 낼 수 있는 프랜차이즈 창업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본금 1억 원으로 창업이 가능한

요즘 없어서 못 파는 이 맥주,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수제 맥주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특색있는 맥주를 뜻한다. 물, 맥아, 효모, 홉을 주재료로 만들지만 재료 함량, 발효법, 숙성기간 등을 조절해 일반 맥주와 달리 특색 있는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수제 맥주에 빠져 20여년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국내 중소 수제 맥주 업체 중 최초로 맥주 제조 면허를 획득했다. 또 기존의 대기업의 라거 맥주와 달리 맛과 향이 풍부한 에일 맥주에 집중하면서 국내 에일 맥주 시장을 선도했다. 최근에는 출시 3일 만에 10만개가 팔려나간 곰표 밀맥주를 만든 곳으로 주목받았다. 1세대 수제맥주 업체 세븐브로이 김강삼(63) 대표를 만났다. 세븐브로이 김강삼 대표. /세븐브로이 -자기소개해 주세요. “세븐브로이를 운영하는 김강삼입니다. 20여 년 간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어요.” 전라북도 고창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모습. /세븐브로이 서울 강서구에 횟집을 창업했을 때 모습. /세븐브로이 제공 -맥주 제조업을 시작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전북 고창에서 나고 자랐어요. 돈을 벌기 위해 고등학교 땐 재단 기술을 배웠습니다. 1983년 고향에 양복점을 열어 10여 년간 운영했죠. 꼼꼼한 솜씨에 단골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양복이 기성화하면서 양복 재단 일은 사양 산업이 됐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양복점을 접은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대형 횟집이 유행이라 서울시 강서구에서 횟집을 열었어요.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였지만 박리다매로 승부를 걸었어요. 탕수육 등 푸짐한 밑반찬을 내놓는 가게로 유명해졌고 가게는 인산인해였어요. 주말에는 280석 자리가 꽉 찰 정도였습니다. 외식업으로 사업 방향을 잡았고, 1998년 근처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도 열었습니다. 운 좋게 이 사업도 대박이었습니다. 1년 만에 건물 한 층을 매입하고, 투자금을 회수할 정도였으니까요.”   횡성 양조장 모습. 해발 300m에서 퍼오는 횡성의 청정 암반수로 맥주를 만든다. /세븐브로이 제공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수제 맥주였다. 정부는 2002년 월드컵을 맞아 하우스 맥주 규제를 완화해, 술집에서 자체적으로 맥주를 양조할 수 있도록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규제 완화로 브루펍(매장에서 직접 맥주를 제조해 판매하는 형태의 펍)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 싶어 곧장 독일로 갔습니다. 수제 맥주 제조 기계를 수입하고 독일인 맥주 장인을 모셔 와 2003년과 2005년 각각 서울역과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수제맥줏집을 열었습니다. 6년 정도 독일인 맥주 장인에게 기술을 배우면서 수제맥주를 개발했어요. 고객의 입맛에 딱 맞는 맥주 맛과 향의 밸런스를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쏟아 버린 맥주만 수천 톤에 달할 겁니다.” 이후 김 대표는 2011년 세븐브로이 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수제 맥주 제조사업에 나섰다. 그해 중소 수제 맥주 업체 중 최초로 맥주 제조 면허를 땄다. 제조면허를 취득한 후엔 강원도 횡성에 공장을 지었다. 수제 맥주는 물이 좋아야 맛있다는 김 대표의 철학 때문이었다. “같은 맥아와 홉을 써서 만들어도 어떤 물을 쓰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컸어요. 전국을 뒤진 끝에 청정지역인 강원도 횡성을 찾았죠. 해발 300m에서 퍼오는 횡성의 청정 암반수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국내 최초 에일맥주인 ‘세븐브로이 IPA(인디아 페일 에일)’를 출시했습니다. 맛본 손님들은 ‘독일 맥주보다 맛있다’면서 좋아하셨어요.” 주류 박람회에 참가한 모습. /세븐브로이 세븐브로이 첫 수출 모습.

공장에서 미싱 돌리던 고등학생 “지금 베컴부부 보다 부자되었죠”

1985년 부푼 꿈을 안고 상경한 한 소녀가 있습니다. 이 소녀는 스스로 학비를 벌어야 했기에 이른 아침부터 와이셔츠 공장에서 오후 늦게까지 미싱을 돌린 뒤 퇴근하자마자 야간 고등학교로 출석해 수업을 들어야 했는데요. 그럼에도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그 자체가 그녀에게는 큰 기쁨이었다고 합니다. 전북 정읍에서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학교 진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