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 때 난치병 이겨내고 전교 1등·서울대…이 사람이 사는 법

고등학교 시절 전교 1등에 학생회장까지 한 성실한 학생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원인도 정확히 모르고, 치료법도 없는 난치병이 찾아왔다. 진단명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루푸스. 고작 18살 때였다. 쉽게 피로해지는 몸을 이끌고, 매일 스테로이드 약을 12알씩 먹으면서 공부했다. 그렇게 서울대학교에 진학했고, 로스쿨을 준비했다. 증상이 호전되나 싶었지만, 로스쿨 입학시험을 본 직후 쓰러졌다. 신장 기능을 거의 모두 잃었고, 27살 때부터 복막투석을 시작하면서 장애인이 됐다. 2020년 기적적으로 남동생에게 신장이식을 받고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전하는 작가로 활동 중이다. 희우(28)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희우 작가. /본인 제공 서울에서 나고 자란 희우씨는 학창 시절 밝고 열정적인 학생이었다. 구로고등학교 재학 시절 전교 1등을 하고, 학생회장도 하는 등 매사에 성실했고, 교우 관계도 좋았다. 그런 그가 몸의 이상을 느낀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어요. 머리를 감고 나면 손에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져 있었죠. 머리가 자주 아팠고 고열도 잦은 데다 눈도 계속 부어 있었어요. 친구들이 라면 먹고 잤냐고 놀릴 정도였죠. 그때까지만 해도 자잘한 증상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어요. 동네에 있는 피부과와 내과 등을 전전하면서 해열제나 두통약을 처방받고 끝났어요. 그런데 어느날 뭔가 이상할 만큼 열이 심하게 났어요. 두 달 내내 38~39도에 달하는 고열에 시달렸는데, 그때 뭔가 문제가 있구나 싶었죠. 그리고는 처음 대학 병원을 찾아 갔어요. 아직 어리니까 크게 아플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검사를 받았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진단명은 희소 난치병인 루푸스였어요. 그때가 18살이었어요. 루푸스는 면역계 이상으로 온몸에 염증이 생기는 자가면역질환이에요. 자가면역이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인체를 공격하는 질환입니다. 이 질환이 생기면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요. 피로, 발진, 관절 통증, 열, 두통, 탈모, 가슴 통증, 신장 이상

발레리노에서 사진작가로…그 남자의 이유 있는 ‘변신’

박귀섭 작가의 ‘쉐도우’ 시리즈 중 2번 작품이다. 국립발레단 무용수 10명이 나무를 형상화한 이 작품은 2015년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로 쓰였다. /박귀섭 작가 제공 한국 작가가 찍은 사진 한 장이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의 러시아판 표지를 장식해 화제였다. 사진 속에는 국립발레단 무용수 10명이 몸을 포개고 나무를 표현하고 있다. 쭉쭉 뻗어낸 팔과 다리가 금방이라도 꿈틀거릴 듯하고, 어깨와 등, 손가락 하나하나의 근육이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무용수의 몸짓을 가장 잘 포착한다는 평을 받는 이 사람은 국립현대무용단 발레리노 출신의 사진작가이자 비주얼 아티스트 박귀섭(BAKI) 작가(37)다. 최근에는 무용 영화 ‘상태가 형태’의 영상 감독,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스위트홈’의 타이틀 영상 연출가를 맡아 주목받았다. 유망한 발레리노가 돌연 무대에서 내려와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유가 궁금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귀섭 작가. /본인 제공 -원래 발레리노였다고요. 언제부터 발레를 했나요? “중학교 때까진 미술을 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체육부장 선생님이 운동하는 모습을 보시곤 몸이 유연하다면서 무용을 추천했어요. 워낙 춤을 좋아했던 터라 선뜻 무용부에 들어갔습니다. 남자가 무용한다고 놀림도 많이 받았지만 재밌었어요. 무대에 오르는 것도 즐거웠죠. 공연을 앞두고는 오전 7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연습했어요. 발에 골절과 염증은 기본으로 달고 살았죠. 그땐 발이 성한 적이 없었어요. 그래도 무용하는 게 좋았습니다.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해 무용을 전공했습니다. 졸업 후 2006년에는 국립발레단에 들어갔어요. 발레단에 들어간 지 6개월 만에 운 좋게 해외 안무가 선생님 눈에 띄었어요. ‘카르멘’이라는 작품을 맡아 솔리스트(soloist·발레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무용수)로 활동했어요. 솔리스트로 무대에 오른 첫 작품이라 가장 기억에 남아요.” 박 작가는 그렇게 발레단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돼 떠오르는 발레리노로 주목받았다. 2007년 입단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아 뉴욕 인터내셔널 발레 대회에서 동상을 수상했을 정도로 실력도 뛰어났다. 발레리노로 잘 나가던 그는 2010년 돌연 발레단을 그만둔다고 선언했다. 당시 최태지 국립발레단 단장까지 나서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갑자기 발레를 그만둔 이유가 뭔가요.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어요. 이런저런 다양한 일에 관심이 많았죠. 10여년간 발레만 해왔으니 이제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패션 쪽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많아 자연스레 사진에 관심이 많았어요. 멋있는 사진을 보면 ‘이건 어떻게 이렇게 찍은 걸까’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죠. 처음엔 사진과 관련한 이론 책 3권을 사서 계속해서 봤어요. 또 알고 지내던 사진작가를 졸라 어깨너머로 사진 찍는 법을 배웠어요. 발레단 연습이 끝나면 스튜디오로 달려가 밤새 사진을 찍었습니다. 돈이 많지 않을 때라 제대로 된 장비도 없었어요. 20만원 짜리 캐논 카메라 하나 들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발레는 짜인 동작을 계속해서 반복 연습해요. 또 무대 위에서 선보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죠. 반면, 사진은 바로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생각한 걸 빠르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매력적이었죠. 사진을 제대로 공부해봐야겠다고 결심했고, 그래서 2010년 발레단을 나왔어요.” 10년 넘게 발레만 해오던 그가 새로운 터전에서 자리 잡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사진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특별한 경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먼저 연락해 온 광고주도 이력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를 더 악물었다. 그는 가장 익숙하고, 잘 아는 무용과 관련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박귀섭 작가는 무용수로 활동했기에 사람 몸의 움직임과 선에 관심이 많았다고

스타벅스 종이 빨대 10개 중 9개는…

“‘무늬만 종이’인 가짜 종이컵은 가라” ‘진짜’ 썩는 종이컵 만든 리페이퍼 윤철 대표 국내 연간 종이컵 사용량 230억개. 이 만큼의 종이컵을 생산하려면 50m 이상의 나무 1500만 그루를 벌목해야 한다. 이뿐 아니다. 말이 종이컵이지, 대부분은 폴리에틸렌(PE) 코팅이 돼 있어 재활용이 안 된다. 결국 다 쓴 종이컵은 소각하거나 폐기해야 하는데 땅에 묻어도 자연 분해되는데 20~30년 이상 걸린다. 이 역시 100% 분해되지 않아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98% 이상 재원료화가 가능한 친환경 식품 포장용지 기술을 개발한 이가 있다. 국내 스타벅스 종이 빨대 10개 중 9개에는 이 기술이 담겨 있다. 친환경 제지코팅 솔루션 기업 ‘리페이퍼’의 윤철(55)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리페이퍼 윤철 대표. /jobsN 한양대 화학공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윤 대표는 1994년 국내 최대 종합제지사 한솔제지 연구원으로 입사해 7년여간 일했다. 일하면서 글로벌 비즈니스에 관심이 생겨 2001년 퇴사 후 미국 썬더버드 경영대학원(MBA) 과정을 밟았다. “학교 프로젝트 중 하나가 미래 제지 산업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제지사 연구원으로 오랜 기간 일한 경험이 있다 보니 더 관심이 컸죠. 방수·내수 처리한 종이는 재활용이 안 돼요. 친환경 코팅 원료를 개발해 100% 재활용할 수 있는 친환경 종이를 만들면 좋을 것 같았어요. 당시 세계적으로 친환경 트렌드가 점차 자리 잡을 거로 예상했어요. 사업성뿐 아니라 사회와 환경에 기여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종이컵 분해와 재활용이 가능한 방법을 고민했어요. 한국에 돌아와 2005년부터 6년여간은 펄프나 원지 등 종이 원자재 원료를 유통하는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그쯤 친환경 제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린 워싱(가짜 친환경) 제품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 등에서 주로 쓰는 컵은 플라스틱으로 만든 일회용 컵이거나 양면이 폴리에틸렌(PE)으로 코팅된 ‘무늬만 종이컵’인 제품이 대부분이었습니다. PE 코팅 종이컵은 겉보기에는 종이지만 표면의 코팅제를 분리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재활용할 수가 없어 다 소각하거나 폐기하고 있습니다. 소각할 때 유해 가스가 나오고 땅에 묻어도 썩지 않아 환경에 나쁜 영향을 줍니다. 결국 문구만 친환경인 셈이죠.”  리페이퍼는 전세계 최초로 98% 이상 재원료화가 가능한 친환경 식품 포장용지 기술을 개발했다. /리페이퍼 윤철 대표는 리사이클링 가능한 ‘진짜’ 친환경 종이컵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창업진흥원의 지원 프로그램으로 2014년 ‘리페이퍼’를 창업했다. 그해 10월 참가한 ‘대한민국 친환경 대전 전시회’에서 눈에 띄어 NICE그룹이 관심을 두고 투자했다. 이어 이듬해엔 계열사로 편입됐다. 윤 대표는 자금이나 시설 등 충분한 인프라를 확보하고서야 기술 개발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2017년 세계 최초로 98% 이상 재원료화가 가능한 친환경 코팅제 ‘알피 시리즈(RP-SERIES)’ 개발에 성공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2%는 종이컵에 있는 잉크나 종이컵 사용 후에 남아 있는 잔여물 등이다. 리페이퍼 코팅 기술의 핵심은 코팅 원료로 플라스틱 성분인 폴리에틸렌 대신 아크릴레이트를 쓰는 것이다. 아크릴레이트 공중합체(2개 이상의 단량체가 결합한 구조)인 폴리머는 제지사들이 줄곧 써 온 물질로써 내수성(물에 젖지 않는 성질)을 지닌다. 이는 폐지를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일반 종이가 해리(물에 풀어지는 현상)되는 것처럼 물에 풀어지게 한다. 그래서 폴리에틸렌과 달리 재활용이 가능하다. 자체 기술로 개발한 친환경 코팅 기술은 식품접촉안전성 인증을 받았다. 인체에 무해하고 태워도 유해가스가 나오지 않는다. 땅에 묻어도 쉽게 자연 분해돼 퇴비로도 쓸 수 있다. 열에도 안전해 전자레인지와 오븐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 친환경 제지 코팅제와 관련해 국내 특허 6종, 해외 유럽, 미국, 일본, 중국 특허를 가지고 있다.  리페이퍼는 올해 미국 GPI사와의 2년간 1500톤

요즘 없어서 못 파는 이 맥주,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수제 맥주란 소규모 양조장에서 자체적으로 제조하는 특색있는 맥주를 뜻한다. 물, 맥아, 효모, 홉을 주재료로 만들지만 재료 함량, 발효법, 숙성기간 등을 조절해 일반 맥주와 달리 특색 있는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수제 맥주에 빠져 20여년 외길을 걸어온 사람이 있다. 국내 중소 수제 맥주 업체 중 최초로 맥주 제조 면허를 획득했다. 또 기존의 대기업의 라거 맥주와 달리 맛과 향이 풍부한 에일 맥주에 집중하면서 국내 에일 맥주 시장을 선도했다. 최근에는 출시 3일 만에 10만개가 팔려나간 곰표 밀맥주를 만든 곳으로 주목받았다. 1세대 수제맥주 업체 세븐브로이 김강삼(63) 대표를 만났다. 세븐브로이 김강삼 대표. /세븐브로이 -자기소개해 주세요. “세븐브로이를 운영하는 김강삼입니다. 20여 년 간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어요.” 전라북도 고창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던 모습. /세븐브로이 서울 강서구에 횟집을 창업했을 때 모습. /세븐브로이 제공 -맥주 제조업을 시작하기 전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전북 고창에서 나고 자랐어요. 돈을 벌기 위해 고등학교 땐 재단 기술을 배웠습니다. 1983년 고향에 양복점을 열어 10여 년간 운영했죠. 꼼꼼한 솜씨에 단골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양복이 기성화하면서 양복 재단 일은 사양 산업이 됐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양복점을 접은 뒤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당시 대형 횟집이 유행이라 서울시 강서구에서 횟집을 열었어요. 1997년 IMF 외환 위기 때였지만 박리다매로 승부를 걸었어요. 탕수육 등 푸짐한 밑반찬을 내놓는 가게로 유명해졌고 가게는 인산인해였어요. 주말에는 280석 자리가 꽉 찰 정도였습니다. 외식업으로 사업 방향을 잡았고, 1998년 근처에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도 열었습니다. 운 좋게 이 사업도 대박이었습니다. 1년 만에 건물 한 층을 매입하고, 투자금을 회수할 정도였으니까요.”   횡성 양조장 모습. 해발 300m에서 퍼오는 횡성의 청정 암반수로 맥주를 만든다. /세븐브로이 제공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수제 맥주였다. 정부는 2002년 월드컵을 맞아 하우스 맥주 규제를 완화해, 술집에서 자체적으로 맥주를 양조할 수 있도록 소규모 맥주 제조면허 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규제 완화로 브루펍(매장에서 직접 맥주를 제조해 판매하는 형태의 펍)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 싶어 곧장 독일로 갔습니다. 수제 맥주 제조 기계를 수입하고 독일인 맥주 장인을 모셔 와 2003년과 2005년 각각 서울역과 서울시 강서구 마곡동에 수제맥줏집을 열었습니다. 6년 정도 독일인 맥주 장인에게 기술을 배우면서 수제맥주를 개발했어요. 고객의 입맛에 딱 맞는 맥주 맛과 향의 밸런스를 찾기 위해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했습니다. 개발 과정에서 쏟아 버린 맥주만 수천 톤에 달할 겁니다.” 이후 김 대표는 2011년 세븐브로이 맥주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수제 맥주 제조사업에 나섰다. 그해 중소 수제 맥주 업체 중 최초로 맥주 제조 면허를 땄다. 제조면허를 취득한 후엔 강원도 횡성에 공장을 지었다. 수제 맥주는 물이 좋아야 맛있다는 김 대표의 철학 때문이었다. “같은 맥아와 홉을 써서 만들어도 어떤 물을 쓰느냐에 따라 맛의 차이가 컸어요. 전국을 뒤진 끝에 청정지역인 강원도 횡성을 찾았죠. 해발 300m에서 퍼오는 횡성의 청정 암반수로 맥주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국내 최초 에일맥주인 ‘세븐브로이 IPA(인디아 페일 에일)’를 출시했습니다. 맛본 손님들은 ‘독일 맥주보다 맛있다’면서 좋아하셨어요.” 주류 박람회에 참가한 모습. /세븐브로이 세븐브로이 첫 수출 모습.